2024. 10. 2. - 10. 8.
갤러리 엠, 서울
작가노트
2005년 10월 3일이라 했다. 부모님과 함께 무작정 거제도 깊은 산골로 들어간 날. 내 인생의 가장 강렬한 기억들이 시작된 날.
7살에 시작한 병과의 싸움이 11살 되던 해, 더 이상 치료가 어려운 지경이 되자 부모님은 나를 데리고 대체의학 공동체로 찾아갔다.
원장 할아버지가 초등학교 교장선생님 출신이라 초등학생인 나를 늘 자상하게 챙겨주었다. 나에게는 선생님이었고 할아버지였고 의사 선생님이었다.
원장 할아버지가 구입한 산골 폐교를 고쳐서 사는 공동체에서의 생활은 자급자족이 기본이며, 전자제품 사용 금지, 전기는 최소한 사용으로 인터넷도 핸드폰도 안 되었다. 어머니와 나를 두고 직장 때문에 제주로 돌아간 아버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하지만 우리는 매번 전화 안 터진다는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 하루에 한 번 약속한 시간에 전파가 가장 잘 터지는 운동장 한가운데서 아빠와 통화를 한다. 그렇게 나는 시대를 거슬러 자연 속에서 살았다.
환자인 나에게 주어진 일과는 아침 6시에 운동장을 2바퀴 돌고 뒷동산을 올라갔다 온 후에 아침 밥을 먹는 것이었다.
뒷동산, 아침밥을 먹기 위해 반드시 올라가야 하는 곳. 폐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박물관이란 팻말이 붙여진 낡은 교실 앞을 지나면 대나무 숲이 나오고, 누구도 캐 먹을 수 없는 오래된 도라지밭을 지나면 뒷동산 입구다. 어제 들고 다녔던 막대기를 찾아 들고서 덤불을 쳐내고 괜스레 솔방울을 발로 차며 올라간다.
뒷동산에 오르는 이는 원장 할아버지와 엄마, 나뿐이다. 부산 할아버지네와 서울 아줌마네는 건강이 안 좋아 오래 걸을 수가 없었다. 그저 뒷동산 어귀까지 올라와 햇볕을 쪼일 뿐이었다.
그 어느 날도 동네에 다른 이를 마주친 적이 없었다. 하루는 원장 할아버지가 길을 잃어 헤매다 내려오니 10시가 넘어 아침을 먹었다.
11월이 되자 뒷동산에 누르스름하니 단풍이 들었다. 원장 할머니가 나를 불렀다. “훈아! 오늘은 뒷동산에서 새소리를 적어 와라.” 원장 할머니가 주신 볼펜과 작은 공책을 들고 뒷동산을 향했다. 뒷동산 첫 능선을 지나 중턱에 오르자 새소리가 맑게 들렸다. 뭐라 우는지 다 적을 수 없는 새소리들. 그날 나는 그곳에 새가 있음을 처음 알았다. 이름 모르는 새소리들…. 휘비비 삐비비…. 벌써 5개월째 친구 없이 또래의 아이도 없이, 두서너 명의 어른들과 어울려 살고 있는 나에게 새들은 반가운 친구였다. 고개를 쳐들어 새들을 찾아보고, 게으름이 치솟아 걷기 싫은 날은 새들을 핑계로 벌러덩 누워 새를 찾으며 놀았다. 도무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나의 친구…. 하지만 나는 새소리를 들으며 제대로 본 적이 없는 새들과 친구가 되어 갔다.
그날은 같이 오르던 어머니가 물통을 가지러 잠시 내려갔고, 저 멀리 앞장서 걸으시는 할아버지를 쫓아 혼자 걷고 있었다. 빨리 안 오는 어머니에게 심통이 나서 툭툭 치던 막대기에 뱀이 걸렸다. 놀라 막대기를 휘두르자, 막대기에서 떨어진 뱀이 내게로 기어 온다. 막대기로 뱀이 머리를 꽉 눌렀다. “할아버지 뱀이에요” “죽여라.” 더 세게 눌렀다. 뱀이 죽었음을 느껴질 때까지 죽을힘을 다해 더 세게 눌렀다. 그리고 뱀의 꿈틀거림이 멈추자, 막대기를 들어 마구마구 내려쳤다. 그리고 물통을 들고 올라오는 엄마를 향해 소리쳤다 “엄마 가. 그냥 날 버리지 왜 올라오는데, 엄마 가. 나 혼자 산 올라갈 거야 가“
12월이 되자 해는 더 짧아지고 밤은 더욱 길어졌다. 깊은 산의 새벽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새벽예배를 위해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면 어머니가 손전등을 들고 앞장선다. 운동장을 건너오는 손전등 불빛은 부산 할아버지네다. 그리고 작은 예배당 건너편에 주무시는 서울 아줌마네 손전등 불빛이 반짝거리면 모두가 모인 것이다. 우리 방은 예배당 뒤로 돌아 뒷동산 가는 길목에 있어 더욱 어둡고 무서웠다.
전기를 아끼라는 원장 할아버지의 잔소리에 우리는 8시가 되면 소등해야 했다. 5시에 저녁을 먹고 7시에 모여 예배드렸다. 예배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불빛은 작은 손전등뿐이었다. 나의 손전등은 심심하여 온 동네를 휘감아 비추고 엄마의 손전등은 내 발밑만 비춘다. 운동장 건너 소박하게 비치는 불빛은 부산 할아버지가 오늘은 평안하다는 뜻이고 원장 할머니 방 불빛은 성경 필사하는 불빛이었다. 그리고 깜깜한 방에서 슬쩍슬쩍 새어 나오는 원장 할아버지 방 불빛은 나한테 보지 말라고 호통치시던 이곳에 한대 밖에 없는 TV를 몰래 보는 게 분명하다.
2005년 11살의 가을에 찾아간 거제도의 산골 공동체에서 겨울을 보내고 건강을 회복해 나왔다. 그전 병원에서의 혹독한 외로움과 고통을 겪은 후 만난 나의 유년기. 자연 속에서 나는 외로웠고 공포스러웠다. 그리고 궤에서 비를 피하는 노루처럼 평안하고 포근하였다. 비가 오는 날에는 운동장을 돌지 않아도 되고, 뒷동산을 오르지 않아도 된다. 그저 예배당에서 하루 종일 논다. 엄마는 성경을 읽고 나는 만화책을 읽으며. 어머니와 단둘이 있던 그날의 빗소리는 포근하였다.